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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대사를 읽는다는 것은 항상 불편함을 수반한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을 참기가 힘들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읽어야 하는 책임에도 때로는 펼치기를 주저한다. 또 얼마나 많은 아픔을 느껴야 하는지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민중을 기록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고 얼마 안 있어 구입을 했지만 지금까지 3년넘게 읽기를 미적거린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장에 꽃여 있는 책을 볼 때마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찝찝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오래된 부채를 청산한다는 기분으로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의 주요한 고비마다 작가들이 직접 발로 뛰며 쓴 르포들을 모은 선집이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을 시작으로 2014년 온 국민을 경악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21편의 르포가 실려 있다. 다만 세월호 참사는 책이 나온 시점에서 진실은커녕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규명되지 않아 수록을 포기하고 시 한편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물론 이 책에 실려 있는 21개의 사건이 우리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낮은 곳, 가장 어두운 곳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민중 속으로 뛰어든 작가들이 역사의 이면으로 묻혀버린 진실이 무엇인지를 기록한 글이다. 한국현대사 50년동안 우리가 외면한 진실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책은 4부로 되어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10년단위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란 걸 느꼈다. 해서 21편 전체는 아니래도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부분들을 발췌해본다. 글들은 모두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 쓰여진 것들을 모은 것이다.1부, 1970년대소신(燒身)의 경고(警告)/박태순 _ 1970년11월 청계피복공장 노동자 전태일 분신 벽지(僻地)의 하늘/황석영 _ 1973년11월 강원도 고한 동고광업소 탄광 광부 17명 매몰 ‘사회가 이 청년의 죽음으로 인해 티끌만큼이라도, 모래알만큼이라도 조각돌만큼이라도 반성하여 그 사회의 무관심과 모순을 고쳐보고자 노력한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하지만 물론 사회는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 (…) 분신 자살자는 이제 말이 없다. 물론 이 사건은 전혀 끝나지 않았다.’ (43쪽_소신의 경고 中)‘구석구석마다 가득 차 있는 저 비인간화 현상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의 문제일 것이리라. 학대받는 자들은 깨달아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있으되 너무 미약하고, 학대를 통하여 누리는 자들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악조건과 악순환을 통해서 저러한 비인간화 현상은 노출되고 살이 쪄서 드디어는 다수를 일종의 윤리적 공백지대로 이끌어 갈 것이다. 잠깐 외면하고 지나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면역되어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할, 고여있는 사회 속에 잠겨버린 것은 아닌가. 나는 도망가듯이 고한을 서둘러 떠났다.’ (78쪽_벽지의 하늘 中) 2부, 1980년대 광주, 그 비극의 10일간/윤재걸 _ 1980년5월 광주항쟁의 현장 녹두밭 윗머리 사람들/전무용,이은식 _ 1984년 충남 공주군 농촌의 현실 (농수산물 수입개방) 6월항쟁, 민주국가 문은 열었다/윤정모 _ 1987년6월 항쟁의 현장 노동운동의 성지 모란공원/김남일 _ 1989년 노동자, 농민, 민주열사 추모묘역을 찾아서 걸어서라도 갈테야/문익환 _ 1989년 방북사건 ‘열흘 간에 걸쳐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광주민중항쟁은 일단 겉으로는 막을 내린 듯싶었다. 씻을 수 없는 통한을 남긴 채…… 차디찬 아스팔트 위로 싸늘하게 식어간 내 자식과 형제 자매들의 영혼을 부여잡고 통곡하던 유족들의 한 많은 오열을 뒤로 한 채…… 80만 광주시민들의, 400만 전남도민들의, 아니 40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마다 원과 한이 얽히고 맺힌 채……’ (158쪽_광주, 그 비극의 10일간 中)‘7월5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의 운구행렬이 시청 앞 광장으로 들어설 때 백만시민들이 울었고 운구가 단상에 놓이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찬란한 빛이 어둠 위로 천천히 떠 올랐다. 내 생애 처음 본 신비한 전경이었다.’ (240쪽_6월항쟁, 민주국가 문은 열었다 中) 3부, 1990년대 기수(旗手)/이원규 _ 1991년5월 강경대 열사 장례식 투쟁 부신 햇살 어둔 하늘/이상석 _ 1991년 전교조투쟁 부엌에서 우루과이라운드까지/공지영 _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 논쟁과 여성농민의 삶 어느 지구 조각가의 아침/안재성 _ IMF시기 건설기계노동자의 삶 여기는 목숨을 담보로 한 곡예 작업장/방현석 _ 1996년 한라중공업 삼호조선소의 산재사망사건 우리는 한평생이 IMF였어/송경동 _ 영종도 건설현장 일용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득 절해고도의 고독함이 물 밀려온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불길속에서 죽어가도, 한쪽에선 온갖 퇴폐와 음란 속에 히히덕거리고, 그리고 또 한쪽에선 아이를 쳐죽인 자들이 끄떡없이 버티고서 눈을 부라리고. 그 중에 우리는 무엇인가. 갈가리 찢기는 가슴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과 고독. 그러나 이것도 잠시 우리의 용감한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골목골목에서 거리로 뛰쳐나온다.’ (321쪽_부신 햇살 어둔 하늘 中)‘하나의 대형공사가 발주되면 제일 먼저 담당공무원들이 달라붙어 돈을 빨아먹기 시작하고 삼중 사중으로 하청이 내려오면서 업자들마다 한 뭉치씩 챙긴다. 그러다가 부도내고 달아나 버리면 맨 밑에서 땅 파고 물건 대준 이들만 거지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의 부도란 단순히 경제적인 시각만으로 볼 수 없는 사회의 근본적인 질서와 도덕률이 뒤엉킨 현상이다. IMF의 특징이 아니라 신용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은 한국식 천민자본주의 고유의 축재수단이다.’ (369쪽_어느 지구 조각가의 아침 中)4부, 2000년대못다 핀 꽃 두 송이 미선이 효순이/공선옥 _ 2002년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 막장을 달리는 지하철/박영희 _ 2003년2월 대구지하철 방화사건과 민영화 전쟁과 독재를 견딘 이라크 작가들/오수연 _ 2003년 미국의 이라크침공과 한국군 파병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김해자 _ 2004년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삶 그리고 고용허가제 한잔 들쭉술에 녹을 60년 세월인 것을/정지아 _ 2005년 평양 남북작가대회 어느 낮, 대추리를 가다/박수정 _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반대 투쟁 용산으로 이어진 길, 가깝고도 먼/윤예영 _ 2009년1월 용산참사 가만히 있지 말아라/정우영 _ 2014년4월 세월호참사 ‘사장의 동의가 없으면 다른 공장에 취업할 수도 없고, 아무리 욕먹고 맞고 월급을 떼여도 사장에게 잘못 보이면 해고되고, 해고되면 바로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어 강제추방 하겠다는 게 고용허가제’ (470쪽_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中)‘지배세력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일 거다. 하나였던 사람들을 여럿으로 찢어놓고, 불신하고, 의심하고, 반목하게 하는 것. 전쟁기지가 원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일 거다. 하나로 뭉쳐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것.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 자신을 의심하고 남을 의심하게 하는 것. 믿음을 버리게 하는 것. 지금까지 지녀온 것들을 버리게 하는 것. 가치를 흔들리게 하는 것. 서로 싸우게 하는 것. 저 논에 깊은 골을 내어 물이 들어차게 하는 것처럼 사람들 가슴에 골을 내어 서로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 스스로 상처에 맘껏 휘둘려 메말라버리게 하는 것. 자신을 파괴하는 것’ (516쪽_어느 낮, 대추리에 가다 中) 1970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다. 반세기동안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수없이 많지만 고비고비마다 우리가 외면하고 역사에서 지워졌던 기록들이 있다. 다행하게도 훗날 진실이 밝혀진 것들도 있지만 그것 마저도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숨겨놓은 진실이 더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21편의 르포를 읽으면서 생각해본다.
우리 시대 가장 낮은 곳, 가장 어두운 곳으로
작가들, 뛰어들다! 드러내다! 고발하다!
스무 편의 르포와 한 편의 시를 통해 읽는 한국 현대사!

한국문학사의 잊혀진 한 페이지, 르포문학! 역사가 외면한 민중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22명의 작가들의 기록을 모았다.

아무도 모르는 청계피복공장 23살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하고, 대검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에 맞선 5월 광주의 시민들과 함께하며, 불법이주로 내쫓기는 갈색 눈의 노동자들과 같이 분노하고, 미군기지 이전에 맞서 살붙이 같은 터전을 지키려는 황혼기의 노인들의 손을 맞잡는 작가들! 박태순, 황석영, 공지영, 윤정모, 오수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21개의 사건들에 직접 뛰어 들어가 역사 한 줄 기록되지 않는 자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우리가 외면한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다.


책머리에

1부 1970년대
박태순 _소신(燒身)의 경고(警告)
황석영 _벽지(僻地)의 하늘

2부 1980년대
윤재걸 _광주, 그 비극의 10일간
전무용?이은식 _녹두밭 윗머리 사람들
윤정모 _6월 항쟁, 민주국가 문은 열었다
김남일 _노동운동의 성지 모란공원
문익환 _걸어서라도 갈 테야

3부 1990년대
이원규 _기수(旗手)
이상석 _부신 햇살 어둔 하늘
공지영 _부엌에서 우루과이라운드까지
안재성 _어느 지구조각가의 아침
방현석 _ 여기는 목숨을 담보로 한 곡예 작업장
송경동 _ 우리는 한평생이 IMF였어

4부 2000년대
공선옥 _못다 핀 꽃 두 송이 미선이, 효순이
박영희 _막장을 달리는 지하철
오수연 _전쟁과 독재를 견딘 이라크 작가들
김해자 _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정지아 _한잔 들쭉술에 녹을 60년 세월인 것을
박수정 _어느 낮, 대추리에 가다
윤예영 _용산으로 이어진 길, 가깝고도 먼
정우영 _가만히 있지 말아라

■ 해설
김원 _한국 현대사와 르포
장성규 _르포 ‘문학’의 복권을 위하여

■ 부록
현대 한국사 연표
현대 한국사의 주요 기록문학
현대 세계사의 주요 기록문학
출전
지은이 약력